살아야 하는 이유. 사실 내가 항상 궁금해왔던 바로 그 질문 아닌가? 하지만, 이 책을 읽기전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아니 왜 살아있는지를 고민할수록 내가 살아야 할 이유는 찾지 못했었다. 그래서 살아야 하는 이유는 일단 접어두자, 그냥 일상을 주어진 몫을 감당하며 살자고 다짐하곤 했었다. 물론 그렇다고 그 고민이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극도의 신경증에 시달려 결국 자살을 선택한 아들. 일본의 대지진과 핵발전소로 사라진 2만여명의 사람들과 불모의 땅. 그것을 앞에 두고 강상중 교수는 글을 써내려간다. 아마, 저자 스스로도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이유를 찾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을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다 행복해 보이는데, 내 삶은 왜 이리 찌질해 보이는가?’ 몇달 전 우울함에 휩싸였을 때 했던 생각이다. 사실 내가 살아온 인생을 뒤돌아보면, 우울한 시간들이 많았고, 그만큼 내 삶의 목표는 ‘행복’이었다. 불안정한 부모가 가져다 준 우울함, 스스로 자존감이 낮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며 스며든 우울함, 존재 자체의 불안함에서 온 우울함을 주기적으로 마주하며 살아왔다. 물론 우울의 끝에는 ‘왜 살아야 하나?’ 라는 질문이 따라왔다.


 나의 우울함의 근원에는 고독이 있었다. 

 ‘다들 신사들처럼, 숙녀들처럼 세련되게 교제하고 있었지만 마음을 터놓는 신뢰감이나 단란함, 따뜻한 사랑이 부족하고 자의식 과잉에 의한 긴장과 고독과 살벌한 느낌만 있었던 것입니다. (p49. 왜 이토록 고독한가)

 이 책에서 ‘왜 이토록 고독한가’에 대해 파헤치는데, 그전에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많이 깨달을 수 있었다. 예전과는 달리, 신과의 관계, 종교에서 분리됨으로써 자유로운 개인이 탄생했으나, 이들은 나는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자아와 관련된 것을 스스로 생각하며 의미 부여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는 통찰이다. 마음 의지 할 곳을 열심히 찾는 분리된 개인은 바로 나의 모습이었다. 

 자신을 어필하고 싶다는 아주 강한 자기 현시욕을 갖고 있는데도 실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나는 나’로 초연하게 있을 수 없고, 타자의 시선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리며, 그 결과 신경과민에 빠지는 것입니다. (p73)

 자신과 바깥 세계의 연결이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 비유해서 말 하자면 그것은 ‘지평의 상실’이라고 바꿔 말해도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스스로 세계를 바라보고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지평’을 잃어버렸으므로 심한 현기증을 동반하는 불안감이 덮치는 것입니다. (p74)

 지난 몇 년 간, 남편과 싸울 때 대부분 마지막 하소연은 ‘당신은 당신의 삶을 살지만, 나는 나의 삶이 없어.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였다. 육아와 귀촌이라는 특별한 상황 속에서 나는 속을 터놓을 친구도 없고 나의 존재를 실현할 수 있는 일도 없는, 붕 떠있는 존재만 같았다. 지금의 나는 내가 아니라는 부정이 그 바닥에 깔려 있었다. 


 시작할 수 있을까? 

 혼신의 힘을 다해 정신이 파탄 나기 직전까지 철저하게 생각했습니다. ... 사람은 생사의 갈림길을 헤맬 정도로 마음의 병을 앓고 나서야 비로소 그것을 빠져나간 지경에 도달하고 세계의 새로운 가치라든가 그때까지와는 다른 인생의 의미 같은 것을 포착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p121) 

 3월 11일의 경험을 어떻게든 ‘거듭나기’의 기회로 삼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 몇 번이고 좌절하면서도 우리는 한 번도 철저하게 뒤를 돌아보지 않고, 다시 시작하는 것도 생각하지 않고, 멈춰 서는 일조차 없이 그저 ‘실패를 망각하는’ 방법만으로 오늘날까지 살아온 것처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p125) 

 이제껏 나는 삶의 고민과 우울, 고독을 철저히 맞서지 못했다. 아마도 고민, 우울, 고독 뒤에 떡 버티고 있는 ‘죽음’이라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 강상중교수의 말대로 내가 죽을 수 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임을 철저히 깨달을 때에만, 다시 제대로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믿는다는 것. 사랑한다는 것.  

 뭔가를 믿는다는 것은 믿는 대상에 자신을 내던지는 일이고, 그 대상을 긍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비로소 자기 안에서 헛돌기만 하던 고리 같은 것이 뚝 끊어지고 의미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 믿을 수 있는 것이 없으면 저 혼자 제자리를 빙빙 돌고 있을 뿐이기 때문에 의미는 생겨나지 않습니다.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은 ‘자신의 세계’만으로는 결코 완성되지 않도록 만들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p134)

나는 아직 누군가를 진심으로 믿어 본적도 없고, 전적으로 받아들인 적도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이제껏 사랑이라고 말했던 것은 어쩌면, 나를 사랑하고 나를 가치 있게 만드는 그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항상 그 사랑은 불안했고, 외로웠던 것 같다. 나를 내던지는 사랑, 죽기 전에 할 수 있을까. 


질문이 아닌, 답을 하는 삶

 이상하게도 여기서 우리는 때때로 이중의 잘못을 저지릅니다. ‘자연은 제어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사회는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오만’과 ‘태만’의 조합이라고 해야 할까요. 우리는 어디까지나 우리에게 유리하게만 생각하도록 만들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p154)

 죽음에서 멀어졌기 때문에 그와 동시에 삶의 존엄함도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 과거를 소중히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지금을 소중히 하며 살아서 좋은 과거를 만드는 것입니다. ... 과거의 축적만이 그 사람의 인생이고, 이에 비해 미래라는 것은 아직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은 제로 상태입니다.  ... 과거는 신도 바꿀 수 없을 만큼 확실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p168)

우리의 인생은 바로 그 인생에서 나오는 물음에 하나하나 응답해 가는 것이고, 행복이라는 것은 그것에 다 답했을 때의 결과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복은 인생의 목적이 아니고, 목적으로서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p190) 

지금 거기에 있는 것만으로 당신은 충분히 당신답다는 것. 그러니 녹초가 될 때까지 자신을 찾을 필요 같은 건 없다는 것. 그리고 마음이 명령하는 것을 담담하게 쌓아 나가면 나중에 돌아보았을 때는 저절로 충분히 행복한 인생이 되어 있을 것이라는 것 등등. 이러한 ‘태도’가 아닐까요. (p191)

비관론을 받아들이고 죽음이나 불행, 슬픔이나 고통, 비참한 사건에서 눈을 돌리지 않고,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인생을 마음껏 살아가는 길을 보여 주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바로 “인간이 덧없이 죽을 운명에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어디까지나 겸허히 인간적인 것을 긍정한다”(테리 이글터, ‘신을 옹호하다’)는 것입니다. (p195)

 내가 누구인가, 내가 무엇을 잘 할 수 있는가, 나는 행복한가, 나는 행복할 수 있는가. 누가 나를 가치 있다고 하는가. 누가 나를 좋아하는 가. 라는 헛된 질문은 접어두자. 대신. 고독할 땐, 고독한 대로. 슬픔이 몰려올 때는 슬픔을 그대로 마주하자. 별 것 없고 유치한 내 모습도 그대로 마주하자. 오히려 죽음을 눈앞에 항상 그리며 살아야겠다. 생애 마지막 날이라면, 내일 원전이 터져서 더 이상 오늘 같은 내일은 없다면 어떻게 오늘을 살지 생각해보자. 맛있게 밥을 먹고, 아이들과 산책하고 함께 웃고, 남편을 안아주고,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이야기해주겠지. 누군가의 시선을 생각하고 비교하고 괴로워하지 않고, 내가 정말 좋아하고 즐기는 순간을 보내고 오히려 여유로울 수도 있겠다. (끝)



+ 덧붙여... 이 책에는 자본주의와 개인주의 사회가 만들어 낸, 불안에 대한 통찰도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나는 참 여전히 나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느끼고 말하고 있구나. 

 

<살아야 하는 이유> 강상중 지음. 송태욱 옮김.

[좋은 과거] 모임에서 함께 읽고, 나누고,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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