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2014.08.14 17:24

오늘 하루.

분주했던 일이 끝나고, 지금 여기.

이 음악과 이 공간이 너무 좋아서, 여기에 머무르고 싶다.

퇴근하기 싫은 마음.

나는 어쩌면, 엄마라는 아내라는 삶보다는

나만의 삶, 나만의 방, 나만의 글, 나만의 책, 나만의 조용한 식사 시간을 좋아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저 이 시간이 머무르고 싶을뿐. 그 이상도 그 이상의 이상도 아닌.

창문 밖의 풍경이 눈부시지 않고, 적당히 흐리고 비오는 이 날씨가 참 좋은 날.

오늘은 그저 혼자로써의 나.

나만의 나로 있고 싶다.

 

'무릎딱지'라는 책을 읽고, 울었다.

읽어주면서 울었다. 나는 무엇이 그리 슬펐을까.

엄마를 떠나 보내고, 아빠를 떠나보내고, 아들을 남겨두고. 아빠를 남겨두어야 하는 아이들이 생각나서 였을까.

어쩌면,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던 것은 바로 나였고,

일 뒤에 숨고 싶었던 것도 나였고,

연락을 못하고, 찾아가지 않은 것도 나였다.

미안하다고 말하지만, 미안할 짓을 한것도 바로 나였다.

그럼에도 그럴 수 밖에 없는 나.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문득, 이제는 좀 힘을 내고 살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새로운 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는 과거를 내려놓고, 현재와 미래를 보며 나갈 수 있을것 같다. 

이제는 그만 뒤돌아보아도 되겠다는 마음이 든다. 


그만하면 되었다는 생각. 

미안하다고 말하는, 실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너에게 그런 상처를 남겨서 미안하다는, 

너에게 그런 존재여서 미안하다는 아빠의 이야기를 들었다. 

더 나이들기전에, 말하고 싶은것은 말해야 아프지 않고 살수 있다는 엄마의 이야기에 참 고마웠다. 


마음속 상처가, 까만 상처가 하얗게 변했으면 좋겠다는 엄마의 바램을 들었다. 

이제 더 이상은 휘휘 휘져어도 검은 앙금이 온마음을 시커멓게 만들지 않도록. 

그 모든 상처가, 앙금이 하얗게 변하여 없어지길 바란다고 이야기했다. 


어쩌면, 나는 외할아버지가 잘못한 업으로 인해, 내가 그런일을 당했을지도 모를일이다. 

하지만, 그래도 이만하니, 얼마나 다행인가. 나에게 이제 그 일은 어린시절 하나의 상처, 이제는 흔적도 찾을 수 없는 상처의 기억으로만 남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2014년 3월 2일. 나는 잊지 않을 것이다. 

어그러진 과거에서, 나는 이제 좀 멀리 떨어져 나왔다. 

과거를 뒤돌아보며 우는 것을 멈추고, 

이제는 좀 더 가뿐해진, 홀가분해진 나와 함께 오늘을, 내일을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충분하다. 

나의 엄마, 아빠는 충분히 훌륭했으며, 충분히 나를 사랑했다. 그리고 사랑한다. 

그리고 나에게는 더 큰 사랑을 함께 나누고 가꾸어 나갈 

남편과 아이들이 있다.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남자라 하면, 남편의 내면이 어떤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것인지 항상 궁금하곤 했다. 요즘에는 아들에게 나는 어떤 엄마로, 어떤 여자로 기억될지 궁금하다. 엄마와 행복한 애착관계를 맺고 있던 아기는 어느날 엄마의 진정한 소유권을 가지고 가정을 지배하는 힘센 자가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알고 절망한다. .. 그때 여섯, 일곱살짜리 아들은 마음 깊은 곳에서 혼자 고통을 느낀다(44)고 한다.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남자들의 ‘의존성’에 대해 이야기되는 부분이다. ‘식사, 옷차림, 정서적 지원, 자녀양육의 문제를 어머니나 아내에게 의존한다.(170) 사실 남자들이 그토록 긴 기간 동안 여성을 억압하고 심지어 박해해온 이유도 더 잘 의존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171)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면서, 나는 이상적인 아버지처럼 안정적으로 감싸주고, 보고해주고, 의존할 수 있는 상대를 무의식적으로 찾았다. 어린 시절의 결핍에서 오는 어그러진 욕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혼이 몇 년 흐를수록, 나는 남편의 엄마처럼 행동한다. 이거 했나, 저거 했나 확인하고, 밥을 챙기고, 자잘한 일에 잔소리를 해댄다. 어쩌면 나의 아들, 딸에게 하는 것보다 더 많이. 남편이 나에게 원하는 것은 따뜻하게 기댈 수 있는 의존할 수 있는 이상적인 어머니 역할이겠지만. 나는 그것이 서툴고. 이상적이지 않은 잔소리꾼 엄마 역할을 자처해 왔다. 지난 몇 년간, 나는 남편으로부터 분리되고, 또 의존성을 떨쳐버리고 싶어하면서도 가장 의존하기 좋은 대상으로 남편이 존재하길 기대해왔다. 남편이 일 때문에, 집에 없는 날. 모든 스케줄이 평소보다 더 빨리 정리될 때가 있다. 남편에게 의존하지 않는 마음은 오히려 삶은 가뿐하게 했다. 

내 남자에게 의존하는 것은, 나의 마음의 고통을, 어그러진 욕망을 그에게 투사한다는 것이다. 어른들의 인정을 받고 싶고, 혼나는 것이 싫은 나는 끊임없이 남편이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지 못할까, 누군가에게 욕을 얻어 먹을까, 누군가가 등을 돌릴까, 누군가가 실망하게 될까 끊임없이 노심초사하게 된다. 그가 그런 일을 겪는 것은 내가 그 일을 겪는 것만큼, 힘들 것이다. 문제는 어그러진 욕망의 눈으로 내가 바라본 상황들은 항상 어그러지고, 불안해 보였다.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남편이 항상 사람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끊임없이 잔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남편의 뒷통수에 대고 ‘한심한 놈’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결국 그를 판단하고, 등을 돌리고, 실망하고, 욕을 하는 그 누군가는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남편에게 의존했던 마음, 그것이 사랑이라 생각하며 서로 의존하고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다. ‘아내로써 마땅히 해야 할 걱정’이라는 포장으로 나의 부정적인 마음을 그에게 투사하곤 했다. 하지만, 의존과 투사는 상대를, 나 스스로를 갉아먹는 일이었다.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자식은 씩씩하게 부모를 떠나 자기만의 삶을 성취해나간다.’라는 말처럼, 우리의 사랑은 ‘떠남’을 전제로 해야만 더 건강한 것이 아닐까.

나와 너의 존재로써, 각각 독립되어 든든하게 씩씩하게 내 삶을 꾸려나갈 때에만 ‘친밀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서로에게 깊이 이해받고 있다는 느낌, 마음 깊은 곳에서 서로 소통한다는 느낌(156)’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성숙한 여자, 남자가 되고 싶다. (끝)

홍매아 책읽기 모임
(2014. 1. 3)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다른 사람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일은 흥미롭다. 소문도 좋아하고, 뒷말도 좋아하고, 비밀이야기도 좋아하는 나, 솔직히 흥미로웠다. 유사연애에서 언제 진짜 연애가 펼쳐질까 내심 기대도 해보았으나, 이야기는 내가 원하는 대로 흥미롭게만 진행되지는 않았다. “나더러 어디에서 왔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망가진 것들 얘기부터 할 수 밖에 없다. 참 쓰라림도 많았던 부엌세간, 흔히 썩어버린 동물들, 그리고 내 무거운 영혼의 얘기부터”라고 인용한 글처럼, 창부의 역사도 무거운 영혼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되었다. 


스스로 살아왔던 모습을 찬찬히 살피며 분석하는 모습을 읽으며, 이 글을 읽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내가 가진 남자의 이미지, 여자의 이미지, 두려움, 공포, 불안감이 떠오른다. 창부의 역사와 나의 역사가 시소를 타듯 오르락 내리락 한다. 스스로의 임상역사를 써야 한다는 생각 때문일까. 창부의 역사 한 자락, 한 자락을 대하면서, 잊고 있던 저 밑바닥에 꾹 눌러뒀던 기억들이 하나 둘 떠오른다. 친구와 함께 걸었던 산책길, 주고 받았던 편지, 외롭고 쓸쓸했던 날, 무서웠던 기억들, 그래도 그리운 순간들. 토양은 비슷했으나, 씨앗은 달랐고 그 열매도 달랐다. 쓸쓸함, 고독, 특별한 관계에 대한 갈망은 비슷했으나, 스스로 다독이며 살아온 방법은 달랐다. 


<심리적 사랑>부분에서 임상역사를 쓰고 있는 창부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갈등이 드러나는 것 같다. 노트북만 보고 글을 쓰다가, 어느 순간 노트북에 글을 쓰고 있는 나를 천장에서 내려다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신선한 시도였다. ‘우리가 할 일은 보다 깊이 들어가서 심층에서 사유하는 것입니다. 심층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 귀를 기울이다 보면 표면에서 일어나는 것들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나는 이 부분을 분명하게 말 할 수 있습니다.(60)’ 겉으로 드러난 역사보다, 내 마음을 흘러온 역사를 써야겠다고 마음먹게 된다. 누군가에게 나를 알리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나를 돌아보기 위해, 나를 제대로 돌아보기 위해 임상역사를 시작한 것이니 말이다. 


‘앞으로는 지금까지의 무의식적 반복이 아니라, ‘의식적 임상관찰보고서’가 출현하는 여정이라고. 왜냐하면 하나의 역사를 썼기 때문인데, 이렇게 쓰여지고 공포된 역사는 유아기의 맹목적 습성과 현재의 사회적 권력을 결합시키는 행위가 부자연스러운 것임을 알려주기 때문이다.(68)’라고 쓴다. 나 역시 임상역사를 시작하면서 기대하는 부분이 바로 이것일 것이다. 무의식적 반복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 그리고 조금 다른 차원으로 나를 옮겨놓고 싶은 마음. 그리고 창부가 ‘내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는 것, 자기를 신뢰하는 것(69)’이 무엇보다 필요한 때임을 알아차리는 것처럼, 조금 다른 장을 펼치면서 붙잡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깨닫고 싶다.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그런데 자기, 둘째는? 이제 슬슬 나아야지. 아이가 혼자면 가엽잖아.’ 외동딸로 자란 나는 ‘혼자라서 외롭겠다. 가엽다’ 라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듣고 자랐다. 나는 집에서 혼자서 노는 것도 재미있었고, 단지 다른 아이들은 어떻게 형제들이랑 노는지가 궁금했을 뿐인데, 어른들은 나에게 이런 식의 편견을 담아 내 감정을 짐작하는 듯한 말을 하곤 했다. 상대방을 걱정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위로도 아니고, 내 마음을 읽어주는 말도 아닌 선입견으로 시작된 말. 나도 그런 말을 쏟아낼 때가 참 많다. 우리가 대화라고 하는 말 중에, 또는 독백으로 생각하는 것 중에 참 많은 이야기가 여기에 포함되는 것 같다. 이 책에서 딸로 등장하는 ‘리나’처럼, 있는 그대로 마음을 읽어주고,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고, 궁금한 것을 솔직히 묻고 이야기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직장여성와 전업주부, 비혼과 기혼, 스무살과 서른살, 장래희망과 주어진 일, 딸과 엄마… 이 단어를 들으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모습, 티비에서 봐온 전형적인 이미지가 머리속에 남아있다. 그런데,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지금의 나는 꽃 같은 스무살을 넘어, 뭔가 안정된 삶을 누릴 것 같은 서른 살도 지났다. 서울에서 야근을 밥 먹듯하는 커리어우먼으로도 살아보았고, 시골에서 하루 세끼 남편 밥 차려주는 주부로도 살아왔다. 희망했던 직장에도 들어갔었고, 결혼하고 싶었던 남자와 결혼도 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 


어쩌면 질문이 잘못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리나’의 말을 다시 되새겨본다. ‘그럼, 엄마는 지금 뭐지? 투명인간? 엄마는 여기 확실하게 있는데도 이상한 말을 한다…. 그렇지만 엄마는 이미 ‘있다’. 나도 이미 있다. 다행히 투명인간으로 살아오지 않았고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비혼이 결혼을 하면 얻게 되리라 생각하는 안정감도, 주부가 직업을 가지면 자아실현을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모두 허상일 뿐이다. 허상으로 스스로를 괴롭히지도, 남을 판단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 이 책은 만화책이지만, 정말 있을법한, 누구나 한번쯤 들어보고 생각해봤을 이야기로 실마리를 풀어낸 책이다. 고모의 외로움과 불안함도 공감이 가고, 엄마의 나를 잃어버린 것 같은 공허함도 공감이 간다. 이 두사람에게 외로움, 불안함, 공허함을 그냥 있는 그대로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두 사람의 생활도 조금 다를 수 있지 않을까? 그냥 둘 다, 스스로에게, 서로에게 솔직해 질 수 있는 친구가 된다면, 삶은 조금 더 풍성해질 수 있을 듯하다.


“개인적인 행복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행복이란 철저히 사람간의 관계 속에 존재한다.” 부탄연구센터 카르마 우라 소장의 말이다. 결국 내가 원하는 것은 어떤 직업이나, 결혼, 출산, 사회적 지위가 아닐 것이다. 그 관계들 속에서 얻고 싶은 ‘행복’일 것이다. 부탄 사람들이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실제로 행복하다면, 그것은 그들은 가족, 이웃, 자연, 신과의 관계에서 행복하다는 이야기 일 것이다. 관계를 잘 맺고, 관계를 잘 키워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남편과, 아이들과, 부모님과, 마을 이웃들과, 어르신들과, 토끼와, 닭과, 꽃과 나무와, 벼와 관계를 잘 맺고, 그 안에서 행복하고 싶다. 

 

‘행복한 나라 부탄의 지혜’ 이 책은 부탄의 현실을 쓴 책인데, 솔직히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고, 소설에 나올 법한 무릉도원 같은 이상세계로 다가왔다. 만화책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라는 책은 눈물이 핑돌면서 읽었고, ‘행복한 나라 부탄의 지혜’는 크크 웃으면서 읽었다. 첫눈 오는 날은 공휴일이라니, 놀랍고 재미있다. 


부탄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감은 종교나 전통적인 옷과 집을 통해서 많은 부분 스스로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알고 있고, 공동체 안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에 가능한 것 같다. ‘지금의 삶은 잠깐이며, 누구도 죽을 때는 아무것도 갖고 갈 수 없다’, ‘지금의 삶은 일시적이고 사후에는 내세가 존재한다’라는 불교의 확고한 가르침이 부탄을 행복한 나라로 만드는 뿌리가 아닐까? 그러한 뿌리 없이 흔들리는 나와 같은 사람이 고민하며 흘려 보낸 시간에 부탄사람들은 농사를 짓고, 숲을 가꾸며 행복을 누렸을 것만 같다. 


너무나 다른 배경에서 살아와서 인지, 책의 내용이 믿기지 않는 것이 많다. 실제로 부탄사람들이 이렇게 욕심 없이, 지속 가능한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는지, 종교가 권력이나 시장경제로부터 자유로운지 무척 궁금하다. 그리고 한편에선 ‘공동의 행복’이라는 훌륭한 목표를 가지고 실천하고 있는 작은 나라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희망이 느껴진다. (끝)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 – 마스다 미리.

행복한 나라 부탄의 지혜 -사이토 도시야, 오하라 미치요 글. 홍성민 옮김. 양승구 사진.

[좋은과거 모임]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BLOG main image
들꽃처럼... 때로 흔들려도 꿋꿋하게 그 자리에 by cosmoslike

공지사항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46)
글쓰기 (44)
일상 (71)
삶으로 (11)
사람들 (4)
아이와 함께 자라가기 (13)

최근에 받은 트랙백

Total : 380,845
Today : 1 Yesterday : 8